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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금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술 한 잔의 여정

by healthcare369 2025. 10. 18.

술을 마시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건배를 외치며 마시는 첫 잔. 그 순간부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기까지, 우리 몸속에서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술 한 잔이 우리 몸을 여행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만, 정작 그 술이 우리 몸속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술은 간에서 분해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죠. 하지만 실제로는 입안에서부터 시작해 위, 소장, 간, 뇌를 거쳐 전신을 순환하며 수십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글에서는 술 한 잔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전 과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첫 5분: 입과 위에서의 시작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부터 여정은 시작됩니다. 알코올은 분자 크기가 매우 작아서 입안 점막을 통해서도 일부 흡수됩니다. 물론 이 단계에서 흡수되는 양은 전체의 2% 미만으로 미미하지만, 민감한 사람은 이미 이때부터 약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술을 삼키면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갑니다. 위에 도착한 알코올은 여기서도 약 20% 정도가 흡수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위에 음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흡수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공복 상태에서는 알코올이 빠르게 소장으로 내려가지만, 음식이 있으면 위에 더 오래 머물면서 천천히 흡수됩니다. 이것이 바로 술 마시기 전에 뭔가 먹어두라는 조언의 과학적 근거입니다.

위벽을 자극하는 알코올은 위산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이 때문에 술을 마시면 속이 쓰리거나 더부룩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위 점막에 대한 자극이 강해서, 빈속에 독한 술을 마시면 급성 위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15~30분: 소장에서의 본격 흡수

위를 통과한 알코올의 대부분, 약 80%는 소장에서 흡수됩니다. 소장은 표면적이 넓고 혈관이 풍부해서 흡수가 매우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 단계가 바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시기입니다.

소장 벽을 통과한 알코올은 모세혈관으로 들어가 문맥을 통해 간으로 직행합니다. 하지만 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처리되지 못한 알코올은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갑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우리는 술에 취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점에서 개인차가 크게 나타납니다. 체중, 성별, 나이, 유전적 요인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치죠.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 수분 비율이 낮고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어서 같은 양을 마셔도 더 빨리 취합니다. 또한 같은 양의 술이라도 체중이 적게 나가는 사람일수록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아집니다.

30분~2시간: 뇌로 가는 알코올, 취기의 정점

혈액을 타고 전신을 순환하는 알코올은 혈액-뇌 장벽을 쉽게 통과해 뇌에 도달합니다. 뇌는 우리 몸에서 알코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기관 중 하나입니다. 알코올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GABA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을 증가시킵니다. GABA는 뇌의 활동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알코올이 이를 강화하면서 우리는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동시에 글루타메이트라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은 억제합니다. 이 두 가지 작용이 합쳐지면서 술을 마신 초반에 느끼는 그 특유의 '릴랙스'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더 마시면 도파민 분비도 증가합니다. 도파민은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이것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이 술자리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도파민 효과입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알코올 중독의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전두엽의 기능이 억제되기 시작합니다. 전두엽은 판단력, 자제력, 계획 능력을 담당하는 부위인데, 여기가 영향을 받으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술 마시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바로 이 전두엽 억제 효과 때문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0.08%에 이르면 판단력과 협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0.08%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음주운전 기준선이 되는 농도입니다. 0.1~0.15%가 되면 운동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말이 어눌해집니다. 0.2% 이상이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2~6시간: 간의 필사적인 작업

알코올을 섭취한 순간부터 간은 쉬지 않고 일합니다. 간은 우리 몸의 해독 공장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주요 장기입니다. 간에서 알코올 분해는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알코올 탈수소효소(ADH)라는 효소가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바꿉니다. 문제는 이 아세트알데히드가 알코올보다 훨씬 더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는 점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는 두통, 메스꺼움, 얼굴 홍조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가 아세트알데히드를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분해합니다. 아세트산은 최종적으로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흥미롭게도 동양인의 약 40%는 ALDH2 효소의 활성이 낮거나 아예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세트알데히드가 체내에 쌓이면서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두근거리며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알코올 홍조 반응'입니다. 이는 단순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사실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입니다.

간은 시간당 약 7~10g의 순수 알코올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략 소주 1잔이나 맥주 1캔 정도의 양입니다. 이보다 빠르게 마시면 알코올이 체내에 계속 쌓이게 되고, 간이 모두 처리할 때까지는 취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소주 한 병(360ml, 약 54g의 알코올)을 마셨다면, 간이 이를 완전히 분해하는 데는 최소 5~7시간이 걸립니다.

6~12시간: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

술을 마시는 동안과 그 이후에 우리 몸은 심각한 탈수 상태에 빠집니다. 알코올은 강력한 이뇨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항이뇨호르몬(ADH, 앞의 알코올 탈수소효소와 이름이 같지만 다른 물질입니다)의 분비를 억제합니다.

항이뇨호르몬은 신장에서 수분을 재흡수하도록 하는 호르몬인데, 이것이 억제되면 소변으로 배출되는 수분의 양이 크게 늘어납니다. 술을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는 술로 섭취한 수분보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수분이 더 많다는 점입니다.

수분과 함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같은 전해질도 함께 빠져나갑니다. 이런 전해질 불균형은 다음 날 아침의 두통, 현기증, 근육통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특히 마그네슘 결핍은 두통과 피로감을 악화시킵니다.

탈수는 또한 혈액을 끈적하게 만들어 두통을 유발합니다. 뇌를 둘러싼 막이 수분 부족으로 수축하면서 통증 수용체를 자극하는 것이죠. 게다가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성된 염증성 물질들도 두통에 한몫합니다.

다음 날 아침: 숙취의 메커니즘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 순간 느껴지는 그 불쾌감. 숙취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첫째, 앞서 언급한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이 있습니다. 둘째,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와 다른 독성 물질들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셋째, 알코올이 위장 점막을 자극해서 위염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넷째, 수면의 질이 나빴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입니다. 알코올은 처음에는 수면을 유도하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수면 구조를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특히 REM 수면이라는 꿈을 꾸는 깊은 수면 단계가 억제되고, 새벽에 자주 깨게 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자면 오래 잤어도 개운하지 않고 피곤한 것입니다.

또한 알코올은 혈당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간이 알코올 분해에 집중하느라 혈당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이는 저혈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혈당은 피로, 떨림, 짜증 등의 증상을 유발합니다.

숙취의 심각도는 마신 술의 종류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색이 진한 술(위스키, 브랜디, 레드와인)에는 콘제너(congeners)라는 부산물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것들이 숙취를 악화시킵니다. 반면 투명한 술(보드카, 진)은 상대적으로 콘제너가 적어 숙취가 덜합니다.

48시간 후: 완전한 회복까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숙취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술을 마신 후 완전히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데는 최소 48시간이 걸립니다.

간세포는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고, 이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장 점막도 회복 기간이 필요하며,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도 서서히 정상화됩니다. 면역 시스템도 알코올에 의해 일시적으로 약화되었다가 점차 회복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지 기능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주의력, 반응 속도, 의사결정 능력 등은 다음 날까지도 평소보다 떨어진 상태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이 된 후에도 최대 24시간까지 인지 기능 저하가 지속될 수 있다고 합니다.

술과 건강하게 지내는 법

술이 몸을 통과하는 이 복잡한 여정을 이해하고 나면, 어떻게 마셔야 할지가 보입니다.

첫째, 속도 조절이 중요합니다. 간이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양을 고려해서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물 한 잔을 같이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둘째, 반드시 음식과 함께 마셔야 합니다. 특히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음식은 알코올 흡수를 늦춰줍니다. 빈속에 마시는 것은 위장에도 해롭고 취하는 속도도 빠릅니다.

셋째,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야 합니다. 술 마시기 전, 마시는 동안, 그리고 마신 후에도 물을 충분히 마셔서 탈수를 최소화하세요.

넷째,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체질적으로 술이 약한 사람, 특히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사람은 무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주량이 약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알코올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신호입니다.

다섯째,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 합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은 가능하면 무리한 일정을 피하고, 몸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술 한 잔이 우리 몸을 여행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신에 걸쳐 영향을 미칩니다. 입에서 시작해 위, 소장을 거쳐 간에서 분해되고, 그 사이 뇌를 포함한 모든 장기에 영향을 주며, 다음 날까지도 여운이 남습니다.

술은 우리 문화의 일부이고, 적당히 즐기면 사교의 윤활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적당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술이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번 술자리에서 잔을 기울일 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속에서는 수많은 화학반응과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변화들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진다는 것도요. 건강한 음주 습관은 우리 몸의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작은 실천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오늘 밤 술 한 잔과 함께 물 한 잔을 더하는 것, 그것이 내일 아침의 당신을 훨씬 가볍게 만들어줄 것입니다.